고객보호 VS 신 수익모델 '팽팽'
미국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이하 SOE)가 게임 개발사로는 처음으로 온라인게임 아이템 현금거래 사이트를 직접 운영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그동안 게임개발사들이 하나같이 게이머들의 아이템 소유권을 부정하고, 아이템 거래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해오던 것을 완전히 뒤엎는 조치여서 일대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SOE는 감마니아코리아를 통해 ‘에버퀘스트2’를 국내 서비스할 예정이어서 국내 아이템 현금거래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SOE의 이번 조치가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발전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개발사의 아이템 중개가 중요한 매출로 이어질 경우 제2, 제3의 SOE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게임 역기능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아이템 현금거래의 적법논쟁도 재현될 조짐이다.
존스메들리 SOE 사장은 최근 SOE가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의 아이템을 유저들이 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인 ‘스테이션 익스체인지·station exchange’를 만들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는 6월 오픈 할 아이템 거래사이트 ‘스테이션 익스체인지’는 그동안 개발사들이 불법으로 간주해온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사이트와 비슷한 것으로 우선 SOE의 ‘에버퀘스트’ 시리즈의 아이템과 캐릭터, 계정 등이 거래될 예정이다.
그동안 아이템 현금거래를 부정해온 SOE는 이같은 입장 선회와 관련 “ ‘에버퀘스트’ 시리즈를 서비스하면서 음성적으로 발생한 아이템이나 계정의 현금거래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지만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며 “이런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전한 거래시스템을 제공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SOE는 게임내 밸런싱을 위해 아이템 거래가 가능한 서버와 그렇지 않은 서버를 구분하고, 지나치게 아이템 획득과 판매에 연연하는 행위는 제재하는 등 일종의 제한을 두기로 했다.
# 세계 게임업계 맹비난 ‘봇물’
SOE가 아이템 현금거래를 공식화하면서 세계 게임업계는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MMORPG ‘다크에이지오브 카멜롯’ 개발사인 미씩엔터테인먼트 마크 자콥스 대표는 “MMORPG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고 맹비난했고, 미국과 유럽의 개발사도 일제히 바람직하지 않은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엔씨소프트, 웹젠 등 국내 게임업체들도 아이템 현금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기존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며 ‘아이템 현금거래=불법’이라고 못박았다.
사정이 이쯤되자 ‘에버퀘스트2’ 국내 배급을 맡은 감마니아코리아측도 “SOE의 정책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한국 게임계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이유에서도 현거래를 지지하는 정책 수립은 없을 것이며, 게임 상의 아이템으로 인한 게이머간 분란과 갈등을 빚는 경우 적당한 시기에 유저들의 생각과 의견을 묻는 기회를 가질 계획”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지금까지 게임개발사들은 아이템 현금거래가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의 본질을 훼손할 뿐 아니라 게임내 밸런싱 훼손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며 약관을 통해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더구나 아이템 현금거래 때문에 사기, 폭력 등 역기능이 잦아지자 아이템 거래자의 계정을 압류하는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 SOE 속내 놓고 ‘설왕설래’
그러나 SOE가 이같은 논란을 충분히 예상됨에도 굳이 아이템 현금거래를 공식화한 배경을 놓고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SOE가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밝힌대로 ‘유저 보호’ 차원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SOE가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감마니아코리아측은 이에 대해 “ ‘에버퀘스트’ 시리즈로 500만명 게이머를 확보해 지난 5년간 세계 MMORPG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해온 SOE가 수수료를 목적으로 많은 논란과 비난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선 고객보호와 서비스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아이템 현금거래가 SOE의 신 수익모델로 변질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외신도 SOE가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아이템 중개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SOE는 아이템 거래 성립시 일정부분의 수수료를 챙기기로 했으며, 게이머들의 요구가 높을 경우 일반서버를 아이템 거래가 가능한 서버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혀 수익모델화의 여지를 남겼다는 지적이다.
아이템베이 박형신 마케팅 이사는 “SOE가 표면적으로는 별도의 수익을 창출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금 더 지켜볼 문제”라며 “SOE가 아이템 중개 결정을 내린 데에는 최근 불고 있는 MMORPG의 부분유료화와 같은 기존 과금정책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 아이템 현금거래 양성화 ‘고개’
SOE의 이번 조치가 고객보호 차원인가, 수익모델 창출 수단인가 하는 논란을 떠나 그동안 터부시해온 아이템 현금거래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낼 공산이 커졌다.
SOE의 이번 조치는 개발사가 직접 약관을 통해 아이템 현금거래를 인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아이템 현금거래가 활성화돼 SOE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자리잡는다면 다른 개발사들도 앞다퉈 현금거래 사이트를 만들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국내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규모가 연간 3000억원대로 커져 충분히 시장성이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개발사가 직접 아이템 거래에 나서면서 아이템 거래 중개 전문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아이템 거래 중개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아이템베이측은 이에 대해 “개발사들이 아이템 거래에 나서는 것은 위기이지만 아이템 거래시장 파이를 키우는 기회도 될 것”이라며 “아이템 거래를 위해서는 기존의 게임 운영자(GM)과 별도로 콜센터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적지 않아 기존 중개전문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발사와 공조할 경우 거래 사기 등의 위험요소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게 아이템 중개업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엔씨소프트·웹젠 등 게임개발사들이 아이템 현금거래를 불법화하는 법률제정을 정부에 청원하는 등 기존 제재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아이템 거래로 야기되는 사회 역기능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개발사가 직접 현금거래에 착수하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장지영기자(장지영기자@전자신문)